'고립무원' 오지 여교사의 힘겨운 근무
[세계일보 단독 기사]
툭하면 주민 술자리에 나오라… 왜 남겨 보충수업 시키느냐…
섬 지역 초등학교에서 근무했던 한 여교사는 한글이 서툰 학생 서너 명을 방과 후 학교에 남겨 보충수업을 했다. 어느 날 한 학부모가 술을 마시고 학교로 찾아와 “우리 애가 저능아냐”며 행패를 부렸다. 당황한 교사는 교장에게 이를 보고했다.
교장은 학교운영위원회 회의 때 학부모 위원에게 주의를 해 줄 것을 대신 전해달라고 조심스레 부탁했다. 하지만 해당 학부모는 이번엔 교장실에 들이닥쳐 폭언을 했다.
참다못한 교장과 교사가 경찰에 고소한 뒤에야 해당 학부모가 학교 회식을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하지 않은 것에 분풀이를 한 것이었음을 알게 됐다.
이 사건은 몇 년 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 접수된 한 교권침해 사례다. 수십년을 가족처럼 지낸 소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고립된 마을, 각종 이해관계와 갈등으로 교사들이 작은 행동 하나조차 얼마나 ‘눈치’를 보게 되는지 보여준다.
한 교사는 6일 “섬이 대부분 관광지가 돼 학부모들이 식당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교사 회식도 반드시 여러 식당에서 돌아가면서 해야 할 정도로 눈치를 본다”며 “교육 외적인 부분의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섬 등 도서벽지 근무 시 적은 학부모 수, 투자 소외, 여성 무시 문화를 3대 문제점으로 꼽는다.
전남도에서 근무하는 한 교사는 “도서벽지의 소규모 지역일수록 학교가 필수로 구성해야 하는 학교운영위원을 구하기 어렵다”며 “한 번 맡은 사람이 계속 운영위원장이 되는 등 특정인 위주로 참여하게 되고, 이 가운데 일부는 자신의 부탁을 안 들으면 위원을 그만두겠다고 가는 등 교사들 행정업무를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교사들의 사생활 보호문제도 발생한다. 낙도, 오지의 관사에서 지내는 여교사들은 퇴근 후 학부모인 주민들이 술자리에 부를 때 거절할 수 없다고 털어놓는다.
섬에서 근무하는 한 여교사는 “주민들이 화합 차원에서 종종 술자리에 초대한다”며 “처음에는 피하지만 그럴 경우 좋지 않은 소문이 돌아 난처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초임교사가 지역의 견제와 텃세를 이겨내려고 애를 쓰는 과정에서 주민 부탁이나 술자리 참여를 거절하지 못하기도 한다.
도서벽지일수록 시설 투자에서 소외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번 신안 섬마을 성폭행 사건이 벌어진 관사는 대문이 없는 데다 폐쇄회로(CC)TV도 하나 없었다.
또 다른 섬에서 근무 중인 여교사는 “애들이 얼마 없어 곧 없어질 학교라는 인식 탓에 시설투자가 없다”며 “아직도 옛 슬래브집을 개조한 1인용 단독주택 형태의 관사가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남자 교사들도 “고립된 섬 관사에 혼자 남으면 공포심을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지역 특유 보수적 분위기로 여교사를 유독 교사로 대하지 않는 분위기도 있다.
한편 여교사 성폭행이 발생한 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성폭행 혐의로 구속된 주민 3명 중 1명은 학교운영위원 출신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학운위원은 학교와 친밀한 관계를 갖고, 교사들과 학교 행정 사항을 결정하기도 해 책임성, 도덕성이 요구된다.
사건이 발생한 신안군청 홈페이지 등에는 이번 사건에 공분을 느끼며 책임을 묻는 글로 도배되는 등 비난 여론이 거세졌다.
교육부는 이날 도서벽지 관사 CCTV와 방범창, 비상벨 설치 여부를 10일까지 점검하고, ‘도서벽지 지역 교원 근무환경 개선 종합대책’을 이달 말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 전남도교육청은 피해 여교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사이동과 휴직 및 병가 조치를 하고 변호사 선임 등 추후 과정을 지원할 방침이다.
<세계일보 김예진 기자, 광주=한현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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